정말 우리나라 의료현실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배 공감합니다
http://www.health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44
의사들이 바라는 소박한 꿈
이화의학전문대학원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
2013년 05월 30일(목) 12:03:04 헬스포커스(webmaster@healthfocus.co.kr)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모순은 결국 국가의 문제로 집약된다. 의료기관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로 어느 의료기관도 건강보험의 틀을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이 건강보험이 정당한 급여를 준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고 전국 삼십여 개의 공공의료원이 모두 적자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급여로는 도저히 의료기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이 말은 의료기관과 의사에게 비윤리적이고 불공정한 일을 하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국가가 다 있을까?
건강보험을 제대로 운영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그냥 시장에 맡기면 된다. 그리고 가난하여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의료기관을 운영하면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만약 의료가 정말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라 생각한다면 모든 의료기관을 공공화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1만 2,000명이 안정되고 편안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건강보험공단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어느 한쪽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제도를 운영하니 탈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제도 하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계에 대해 갑중의 갑, 슈퍼 갑이다.
이런 불공정하고 비윤리적인 제도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국민,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의사들 자신의 탓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이러다가는 망하겠다고 비명을 질러도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의사는 여전히 기득권자다. 모든 언론매체는 폐업을 하고 망하는 의사의 이야기는 거의 싣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잘 먹고 잘 사는 특권층으로만 다룬다. 이런 인식 하에서 수가를 현실화하자는 주장은 곧바로 ‘집단 이기주의’로 비친다.
그런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국민들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다가 열 명의 의사에게 친절하고 만족스러운 진료를 받아도 한 명의 의사에게 불친절하고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면 기억 속에는 고스란히 그런 불쾌감만이 남아 있어 의사를 매도하는 입장에 적극 동조하게 된다. 이 땅에서 의사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업보다.
한편으로 의사들은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기보다 오로지 자기 한 몸 생존하는 데 급급해왔다. 진료시간을 늘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일하고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분야를 개척하면서 허덕대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은 대학병원대로, 2차병원은 2차병원대로, 개원의는 개원의대로 모두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고, 또 전공별 이해도 일치하지 않는다.
의료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대학병원, 그것도 주요 대학병원의 교수들에게 몰려있지만 이들의 이해는 사실상 개원가와는 동일하지도 않다. 이래서야 의료계에 어떤 힘이 실릴 수 없다. 국민과 여론의 의료계를 바라보는 눈길은 싸늘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바라는 바는 소박하다. 원칙에 입각해 환자를 진료하면서 남들 쉴 땐 쉬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안정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진료를 해서 커다란 부를 쌓을 수 없다는 것쯤은 모두가 다 알지만 그렇다고 손해보고 자기 몸 축내가면서 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대한민국은 이 정도의 소박한 바람도 허용할 수 없는 나라인가?
한편으로 이 의료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1만 2,000명에 달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일 것이다. 공사 수준의 월급을 정년 때까지 보장받으면서 호화 청사를 짓고, 그것도 부족해 직원들의 ‘복지후생’을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는 그들이야말로 온갖 비난과 욕을 들어가면서 간신히 이 의료제도를 떠메고 가는 의사들의 희생으로 자신들의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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