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면 노력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라.”
권복규 이화여대의대 교수는 지난 20일 대전 하히호호텔에서 열린 ‘2013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학술대회’에서 “의료계와 의대 문화 중 가장 안 좋은 것이 내가 원하는 길, 삶을 살기보다는 남들이 어떻게 하나 둘러보는 ‘족보 베이스 삶’이라는 것”이라며, 자신의 뜻대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한국에서 의사로 수련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 직업적 안전성이나 삶의 여유, 인술에 대한 보람 등의 측면에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며, “수련을 마친 후 5% 남짓 갖게 되는 메이저 대학병원의 교수 타이틀이 행복해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본인이 좋아서 하는 삶이 아니라면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다.”면서, “기초교수인 나는 그나마 낫지만, 주말과 휴가도 없고 평균 귀가 시간이 밤 10시~11시인 임상교수들을 보면 정말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의학교육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학부와 예과, 본과, 전공의 시절을 거치는 동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돈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장사는 어떻게 하고 빚은 어떻게 내는지에 대한 교육 없이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면 장래가 보장된다는 주문을 걸고 마구 돌려대며, 10여 년간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도 대안이 없는 상황이 돼 버린다는 것.
권 교수는 이어 “과연 이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보라.”면서, “의사로 살아가는 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면 노력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길을 모색하라.”고 조언했다.
그 일환으로 그는 의료민영화 추세에 따른 메디컬 매니지먼트와 더 나아가 보건정책을 연구하는 공무원을 제시했다.
또, 의료와 관련된 정보나 엔지니어, 조직공학, 인공장기 등의 필드를 염두에 두고 찾아볼 것과,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말고 외국으로 눈을 돌려 글로벌한 삶을 사는 것도 괜찮다고 전했다.
아울러 임상시험 대행회사인 CRO 분야가 우리나라에는 매우 취약한데, 의사가 하기에 좋은 분야인 만큼 이 부분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병원 상대 아웃소싱 등도 유망한 비즈니스 분야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의사들이 의협이나 지역의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단 의사들이 주체가 돼야 의료를 바꿀 수 있는데, 지금까지 힘을 모은 적이 없다는 것.
그는 “어려운 의료 현실을 타개하려면 리더십이 있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하며, 이런 사람들을 회원들이 회비를 잘 내고 서포트를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권 교수는 김용익 의원이 자신의 스승이지만 현실과는 좀 동 떨어진 주장을 하기 때문에 비판한 적이 있다며, 지금까지 의료관리, 의료정책 등에 헌신한 사람들은 진보 분야 인사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의사들이 의료사회학, 의료인류학, 의료법학 등을 공부하고 의료계 정책에서 의사가 주체가 돼 정부와 정치권에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젊은 의사들도 지역의사회가 나에게 해 주는 것이 없다고 비판하며 피하지만 말고, 그 안으로 들어가 조직을 바꿔야 10만명 엘리트 조직에 걸맞는 위상을 가질 수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거듭 “SNS 등을 통해 접하는 개원의들의 불쌍한 현실을 보며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이 왜 그렇게 전락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정말 의술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노력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양한 필드를 찾아라. 우리나라에서만 한다고 생각하는 지평을 벗어나라.”고 강조했다.
한편, 권 교수는 보건소의 진료범위에 대한 공보의의 질문에 “보건소나 보건지소의 목적은 예방과 건강증진인데, 자꾸 진료기능으로 확대하는 것은 지자체장의 선심성 측면이 강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농특법상 보건지소는 의료취약지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나라에 의료기관의 접근성이 불가능한 곳은 거의 없다고 본다며, 보건소나 보건지소의 진료기능 확대 문제점에 대해 거듭 비판했다. |